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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 – 미국미술, 세계의 중심으로

by Golden C. 2021. 8. 23.

추상표현주의 미국미술, 세계의 중심으로

 

 1940년대 말, 세계는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전쟁 중 미국에 전해진 초현실주의는 미국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초현실주의와 다다가 전해준 반이성에 더하여, 미국의 화가들은 즉흥성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은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미술이란 결과물이 아닌 작품을 창조하는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다른 이름은 뉴욕파,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었습니다. 그들은 작품 창작의 역동성과 액션, 에너지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들은 전혀 새로운 미술을 만들고 그 시작을 자신들의 미술이 되기 원했습니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화가는 잭슨 폴록, 아쉴 고르키, 한스 호프만입니다. 화가들은 대상의 객관화에서 꾸준히 탈피해 왔습니다. 그리고 대상을 화가의 감각대로 기하학적인 추상화 단계까지 왔습니다. 이제 추상표현주의에 오면 화가들은 이것에서 마저도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우연과 순간의 충동에 기대어 그들은 작품을 그리는 행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너무도 즉흥적인 나머지 몇몇 비평들은 이 그림이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모르겠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즉흥성의 회화로 인해 미국 미술은 세계 아방가르 미술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미술은 객관적 표현도, 대상의 추상화도 뛰어넘어 작가의 에너지와 감정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추상표현주의는 미술을 전혀 새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사조들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전 시대의 미술은 부정되었고, 추상표현주의와 함께 미국은 이제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부상했습니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작가

잭슨 폴록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56)은 액션 페인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입니다. 책에서 본 캔버스 전체에 물감을 흩뿌린 것 같은 그의 작품들은 실제로는 대형 그림들입니다. 이것은 그의 작품 제작 방식 때문입니다. 그는 헛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에 상업용 물감을 뿌리거나 쏟아부으면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액션은 당연히 그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방향으로 뿌려진 물감의 흔적은 캔버스 위에 층층이 쌓여 마치 여러 색의 거친 그물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폴록은 그의 거친 화면만큼 터프한 기행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기행과 싸움, 비평가와의 언쟁을 벌이며 거친 인생을 이어가던 그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잭슨 폴록, <One, No 31>, 1950년, ⓒ MoMA

 

아쉴 고르키

아쉴 고르키(A. Gorky, 1904-48)는 아르메니아 이민자 출신입니다. 그는 190cm에 달하는 큰 키와 드라큘라와 같은 검은 옷의 기괴한 모습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고르키는 자동기술법(automatic)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입체주의적, 초현실주의의 단계를 거쳐 자신만의 미국적인 아방가르드 화풍을 이루어 냈습니다. <소키의 정원>은 그가 초현실주의에서 추상표현주의로 이행하는 단계를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은 선명한 윤곽선으로 구불구불한 생물적인 모티브들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강렬한 색으로 채색했습니다. 그는 수채화 기법을 사용하며 원색을 이용, 곡선적이고 살아있는 듯한 모티브들을 채웠습니다. 말년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비극적인 일들로 인해 그의 만년 작품들은 힘을 잃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화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잭슨 폴록은 추상을 통해 화가의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미술사에서 의의를 가집니다.

 

빌렘 드 쿠닝

네덜란드 밀항자 출시인 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97)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화가입니다. 유럽 미술 교육 수학자로서, 그의 시작이 아방가르드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생을 중시하는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여인> 시리즈를 보면 사생을 중시하는 견고한 화풍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왜 추상표현주의자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이 작품들에서 역동적인 붓 동작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 표현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여인> 시리즈에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이미지를 애용했습니다. 화가 난 것 같은 그의 거친 붓질과 붉고 노랑 계통의 그림은 강렬한 눈빛과 인체 표현과 함께 드 쿠닝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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